Dreamworks가 정말 영화를 잘 만든다고 생각한 것이 <슈렉>을 봤을 때다. 어렸을 때 여러 번 봤고, 성인이 되었을 때 다시 한 번 봤다. 다 큰 지금 다시 돌려 보아도 <슈렉>이 유치하게 느껴지지 않고 유쾌하면서 여운이 남는다.슈렉>슈렉>
다른 영화들은 한 번 보면 ‘재밌다’ 라는 감상평이 남을 뿐 내용이 기억나지를 않거나 아니면 해당 영화 자체를 본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이지만, <슈렉>은 예나 지금이나 가장 재미있게 본 영화 중 하나로 기억에 오래 남는다. 나름 추측해 보건대, 순진한 그림체들 뒤에 어린아이들 뿐만 아니라 성인들까지 깊게 공감할 수 있는 철학이 숨겨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슈렉>
그렇게 감명 깊에 봤던 <슈렉>에 나오는 장화신은 고양이에 대한 영화라니! 분명 영화에 나의 감성을 건드리는 교훈이 녹아 들어 있으리라.슈렉>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어떤 사람이 ‘소원을 이루는 별에 이르는 지도’를 채가느냐에 따라 여정의 길이 달라진다는 것이었다. 장화신은 고양이의 ‘소원을 이루는 별’에 이르는 여정에는 외로움의 골짜기와 같은 험악한 길들이 있었다. 하지만 페리토의 여정에는 휴식의 강 등 편안하고 즐거운 여정으로 길이 가득찼다.
나는 이 부분을 [삶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개인이 마주하게 될 인생의 모습]이라고 해석하였다. 같은 목표더라도 어떤 사람은 과정을 험난하게 거쳐갈 것이고, 어떤 사람은 과정에서 만나는 장애물들을 아름답게 생각할 것이다. 장애물들을 내 힘으로 무너뜨리려고 짓밟으려고 애쓸수록 그 장애물들은 나를 지나가지 못하게 더욱 강하게 밀어낼 것이고, 나의 여정은 더 힘들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 장애물들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들을 친구로 맞이한다면, 그들은 두팔 벌려 나를 환영할 것이다.
나의 [인생을 대하는 태도]는 어떠한가? 혹여나 힘든 여정을 가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나의 삶속에서 만나는 것들을 거부하고 짓밟으려고 하지는 않았나? 내가 이루고 싶은 소망은 무엇이며, 그 소망에 이르는 과정에서 만나는 모든 일들로부터 나는 진정으로 ‘향기’를 맡을 수 있는가.
가장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된 장면
충격적이었던 부분은 잭 호너의 모습이었다. 유복한 어린시절, 화목한 가정, 빵빵한 재력이 있었음에도 그는 이를 감사하게 여길 줄 몰랐다. 그의 목표는 오직 그만이 모든 마법들을 훔쳐 그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일이었다. 결국 그의 잘못된 목표는 그를 따르던 많은 제빵사들을 죽음으로 몰았고, 그는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
내가 조금 더 어릴 때 이런 인물을 영화 속에서 봤다면 그저 ‘영화 속 악당’이라고 쉽게 생각하고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난 후에는 이러한 유형의 인물들이 그저 영화 속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이러한 인물들을 현실 세계에서 만나지 않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나부터 일단 저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지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정말 ‘나만’ 잘 되면 될까? 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남들은 어떻게 되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 것. 아니, 나의 욕망을 위해서라면 남을 이용하고 필요하다면 짓밟는 것. 이것이 정말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일까?
잭 호너같은 인물들은 보통 매력적이고 능력 있는 사람으로 비추어 진다. 그리고 실제로 큰 성공을 이루기도 한다. 그렇다면 정말로 솔직하게, 나는 이러한 인물이 되고 싶은가? 이 부분에 대해서 오랫동안 생각해 보았다. 내게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남이 어떻게 되든 말든, 나의 목적을 이루는 것?
그리고 드디어 나의 생각을 조금더 명확하게 정리하게 되었다.
나의 목적을 위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요새 많이 느낀다. 나의 행복을 위해서는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행복도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 ‘나’뿐만 아니라 ‘우리’가 함께 성장하고 또 진심 어린 애정으로 서로를 신뢰하는 관계. 이것이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나는 분명히 크게 좋은 사람은 아니다. 나는 소름 돋을 정도로 차가운 면이 있고, 다른 이에게 상처를 줄 정도로 무관심한 모습을 보일 때도 있으며 수많은 결점과 약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나의 이러한 부분들을 어쩔 수 없이 마주할 때면 죄책감 때문에 많이 힘들다.
이렇게 나약한 내가 어떻게 행복한 삶, 과정 자체를 즐길 줄 아는 삶, 타인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내가 끊임없이 성장하고 즐거운 일상을 보내려면 내가 속해있는 집단의 분위기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주변 사람들의 ‘그릿’지수가 높다면, 나 또한 그렇게 될 확률이 높다. 반대로 주변 사람들이 알코올 중독 증세를 보인다면, 나도 그렇게 될 것이다. 즉, 주변 사람들의 정신 건강과 생활 방식이 생산적이고 인생을 대하는 태도에 배울 점이 있으며 그들만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서는 나부터 일단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내가 나쁜 사람이라면 내 주위에 나쁜 사람들이 몰릴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을 멈추면 내 주위에는 생각하는 것을 멈추는 사람들이 몰릴 것이다. 반대로 내가 열정적이고 타인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내 주위에는 열정적이고 타인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몰릴 것이다.
이렇게 나를 포함한 내가 속해 있는 집단을 ‘좋은’ 사람들로 채우는 데에 성공했다면, 그들과 어떻게 상호 작용할 것인지가 매우 중요해진다. 개인들이 연결된 정도와 그들이 집단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집단의 분위기가 매우 달라지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을 어느 정도는 억눌러야 한다. 인간은 본래 자신의 우월성을 뽐내고자 하고, 본인의 원하는 바를 성취하기 위해 가면을 쓴다. 하지만 집단이 정말 오래 유지되려면 각 개인은 자기몰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타인을 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타인의 감정과 상황에 ‘공감’해야 하는 것이다. 타인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경험과 생각을 간접적으로 읽어내는 것이다. ‘나’만 잘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잘나도록 노력해야 한다.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에게는 시기와 질투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존경의 마음을 가지며 그들로부터 배우고 나의 부족한 점을 채울 수 있도록 하는 반면에, 나보다 못한 사람들은 무시하고 나의 우월성을 드러내는 대신에 나의 재능을 아낌없이 나누고 함께 더 성장하려는 봉사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이 마음은 반드시 진심이어야 한다. 거짓된, 부정직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섞여있다면 타인은 나의 마음을 눈치채게 될 것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가 속한 집단은 실패하고 만다. 결국 ‘서로’가 성장하고 서로를 신뢰하는 관계에 있어야만 ‘나’ 또한 즐겁고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다.
잭 호너는 이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겉으로는 우월하고 다른 이들을 조종하는 데에 도가 튼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그는 본인을 파멸로 이끌었다. 영화에서조차 잭 호너 주변에는 결국 아무도 남지 않았고 다른 이들을 모두 그의 적으로 만들지 않았는가. 죽기 직전까지 그는 본인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닫지 못했으며 반성하지 않았다. 내가 추구하는 것은 이런 삶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이러한 유형의 인간이 되지 않는 것이 일단 첫번째고, 그런 인간들을 마주치지 않는 것이 두번째며, 만약 이런 인간들을 마주쳤다면 최대한 인연을 맺지 않는 것이 세번째다.
곰세마리와 골디락 가족, 고양이 짝꿍과 페리토 팀은 각자 모두 다른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모두들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 달려가는 과정에서 경쟁하고 서로에게 실망도 하였지만 결국 그들이 가장 원하는 소망은 결국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를 더욱 견고히 하고 그들과 함께 하는 과정을 사랑하는 것이었다는 점을 깨닫지 않는가. 소망, 즉 원하는 것은 멀리 있지 않고 내 바로 옆에 있다. 그저 하루하루 감사하고 즐기고 정신적으로 풍족하게 잘 살아내는 것이,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삶일 것이다. 현재를 알차게 살아가기 위해 거대한 목표를 미래에 두는 것도 필요하지만 말이다.
나의 거대한 목표와 소망도, 그리고 그것을 향해 열심히 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달려가는 과정에서 마주치는 장애물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와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하느냐가 나의 솔직하고도 진실된 목표며 삶이라는 점을, 영화를 보면서 다시금 깨닫게 된다.